산에 2009. 10. 1. 08:43

 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 문주란 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생진 시인

 

보목 포구 어유등대가 있던 자리에서

디카의 코를 내밀어 섶섬을 잡아당긴다.

돌아서 보니 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은 문주란

겨울에도 제 생명 움켜쥐고 봄을 기다리는 모습이

처량하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고

수선화야 작으니 귀엽지만

문주란은 덩치가 커서 남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.

겨울바람을 피해 돌담에 기대섰네

겨울 허수아비처럼 꺼칠하니 섰네

봄이 오면 두고 보자는 의지가 이어 다행이네

그런데 어유등대는 어디 갔을까

가로등에 밀려나 물에 빠졌나

그건 봄 여름도 없이 사는 건데

어디로 밀려났다

돌아오지 않은 사내처럼

기다려지네

 

- 서귀포 칠십리길 중에서 -